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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선교역사

언더우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元杜尤, 1859-1916)는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 존(John Underwood)과 어머니 엘리자벧(Elisabeth Grant Marie)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1881년 뉴욕대학을 졸업하여 문학사학위를 받고 그해 가을 '뉴 브런즈윅' 시에 있는 화란 개혁 신학교(The Dutch Reformed Theologica Seminary)에 입학하였다.

언더우드는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학업에는 물론 전도활동에도 열심을 내었다.

1883년 여름과 이듬해, 즉 신학교 마지막 해에 그는 뉴 저어지(New Jersey) 주 폼턴(Pomton)에

있는 교회를 맡았다.

이 교회를 담임하는 동안 언더우드는 선교사의 비전을 갖게되었고 1884년 11월 목사안수를 받고

뉴욕 시에 있는 한 교회의 협동목사로 있으면서 인도선교를 위하여 의학을 1년간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는 엘린우드 박사의 지원과 '맥윌리암스'의 기부(6천달러)로

1884년 7월 28일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에 의하여 한국 최초의 목회선교사(Clerical Missionary)로 파송되었다.

언더우드는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월 25일 요코하마에 도착하였다.

 

 

그는 한국 사회가 갑신정변으로 불안한 상황이었으므로 일본에 우선 정박하였던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헵번(I, C, Hepburn) 박사의 집에 기거하면서 선교사업에 필요한 훈련을 받는 한편

미국 선원들을 위한 전도집회를 열었고, 이수정에게서 2개월간 조선말을 배우고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한국으로 부임하였다.

언더우드가 제물포에 도착한 것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이었다.

 

 

언더우드는 4월 7일 위험을 무릅쓰고 상륙하였다.

언더우드는 이 당시부터 아펜셀러와 함께 이수정 번역의 마가복음을 재 번역하기 시작했으며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하고 1886년 3월 29일 설립된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