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렌이 한국에 와서 처음 겪은 시련, 즉 갑신정변과 민영익을 치료한 사건은 그가 한국에서 자리 잡는 데 지대한 도움이 됐다. 민영익의 치료 현장에서 알렌에게 적대감을 보였던 한의사들은 후에 알렌을 만나 반가워하며 그때의 수고를 칭찬했다. 심지어 그들 자신도 알렌에게 와서 치료를 받았다.
알렌의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했다. 그가 쓴 일기나 회고의 글에는 “한국인은 천성이 양반 같고, 인정이 자상하며 성실하다”는 표현이 도처에 나타나 있다.
청국의 군인들도 알렌을 ‘예수박사’라 부르면서 알렌의 희생적 의료 봉사에 감사해 했다. 만나면 허리를 굽혀 큰절을 하기까지 했다. 청국공사관의 공의로까지 초빙된 것을 보면 알렌의 인기가 국제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나 조정과 온 백성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받은 것이다. 선교사로서 이런 알렌의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고로 선교를 하려는 사람이면 선교지에서 이 정도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와 개혁, 동양과 서양, 귀천·상하의 관통
당시 한국에는 기독교를 금기시 하는 문화가 만연했다. 한미수호조약에는 기독교에 관한 조항은 없었다. 미국 푸트 공사는 혹 알렌이 고초를 겪을까 두려워 그가 선교사인 것을 고종에게 숨겼다.
하지만 고종은 처음부터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없었다. 개화파 김옥균과 박영효가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고종에게 서양문명과 근대화의 핵심과 생명력이 기독교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또 절묘한 타이밍으로 당시 고종이 뫼렌돌프가 쓴 ‘조선략기’란 책을 읽게 된 상황 또한 기독교가 한국에 뿌리 내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뫼렌돌프는 책에서 고종에 대해 “청국황제의 유명무실한 종복에 불과하다”고 묘사했다. 당시 청국은 강력한 반기독교 실체였다. 또한 청국을 배경으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던 뫼렌돌프는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했다.
고종이 뫼렌돌프와 청국에 반감이 생긴 상황에서 기독교가 고종의 인정을 받기위해서는 촉매제 역할을 할 사건이 일어나기만 하면 됐다. 그것이 갑신정변이고, 느닷없는 알렌의 등장이다. 뫼렌돌프가 알렌을 급히 부른 것도 오묘한 우연이랄까. 기독교와 의료, 그리고 미국이라는 요소들의 톱니바퀴가 절묘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이후 알렌은 고종과 막역한 사이가 됐다. 명성황후와도 친해져 지체 높으신 어르신들 옥체에 손을 대 진찰도 하고 치료도 하게 된다. 세상에 이런 급변이 어디 있을까.
또 하루에도 백여명씩 몰려드는 백성들은 물론 청국 군인, 일본 군인도 치료해줬다. 실로 알렌을 통해 보수와 개화파, 일본과 청국, 궁정과 평민, 동서양, 기독교와 반기독교 등 대립해 있는 양편에 다리가 놓아진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이렇게 역동적 에너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기독교가 아니고는 찾아보기 힘든 에너지다.
일본의 마수
알렌이 들어왔을 당시 한국은 극동의 거대 국가들 틈에 움츠려 있던 나라였다. 강대국 러시아와 중국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알렌이 머무는 사이에 일본은 1894∼1895년 청일전쟁과 1904∼1905년 노일전쟁을 일으켜 세계에서 가장 국토가 넓고 역사가 오래된 청국과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광대한 백인 기독교 국가 러시아를, 각각 단 1년 만에 패전시켰다. 이전에는 세계의 벽지로 여겨졌던 아시아가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서기 시작하면서 각광을 받던 격동의 시대였다. 더러는 일본의 등장을 두고 ‘아시아에서 서구의 몰락’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때 일본은 한국에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배경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공격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일본 군인들이 변장을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의 개입은 분명했다. 당시 공격 암호도 일본어로 작성됐다. 일본은 갑신정변이 끝난 후 한국 조정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1885년 정월 초 한성조약을 맺어 11만원의 배상금을 받아낸다. 일본의 득세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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