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일천한 26세 청년 의사로서는 이런 일들이 너무 힘들었다. 그때 중국 상하이에 머물던 미국인 의사 친구들이 “한국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는 외국인이 꽤 있으니 의사로 개업하면 생업으로 전망이 밝다는 그런 권유였다. 친구들은 “수입 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권고를 숨기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에는 조정에서 세관·외교·경제·산업·군사 등 여러 면에서 막강한 권세를 부리고 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라는 사람이 있었다. 알렌의 친구는 그에게 소개장을 써줄 터이니 한국에 가보라고 권했다.
알렌은 ‘의사’라는 직함을 지닌 채 미지의 나라 한국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1909년 선교 25주년을 기념할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한국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때 그는 축전을 보내며 솔직하게 고백한다.
“의사로 한국에 가보라는 말이 마음에 꼭 들어 한국에 가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만일 상부의 허락이 나지 않았더라면 사직을 하고 어딘가 딴 데로 떠났을 것입니다….”
[한국선교 130년 최초 선교사 알렌 이야기] (3) 알렌이 입국하던 날
인천서 조랑말 타고 9시간 걸려 서울에…
서울은 미국인들을 그렇게 환영하고 있었다.
미국 북장로교선교부는 알렌을 의료선교사역자로 한국에 파송했다.
서울은 미국인들을 그렇게 환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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