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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선교역사

알렌의 거대한 역할

알렌은 한국에서 근대식 병원과 학교를 처음 시작했다. 또 조정과 가까워지면서 선교사들이 대거 입국할 수 있도록 돕는 ‘입국통로’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한국에서 안련(安連)이라 불렸는데 묘하다. 선교사들 입국의 길을 ‘안전하게 연결시켜 주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조정과 아주 친근하게 지내게 되고, 고종을 도와 한국이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입국한 지 6년 만에 미국 외교관으로 신분을 바꾼다.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국이 국가 신분을 잃어 공사직에서 해임되고 미국에 돌아갈 때까지, 끝까지 한국을 위해 근대화 사역과 반일 친한의 강경책을 밀고나가는 데 앞장선다.

알렌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 초창기부터 우리 곁을 지켰다. 우리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 더러는 동료 선교사들의 핀잔을 사기도 하고, 더러는 본국 정부와 갈등과 불신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관된 헌신을 보여줬다.

그는 실로 근대화 한국의 대문을 열고, 파란만장한 격동기에 세계적 안목으로 우리 편에 서서 혼신의 힘을 다하였던, 우리 근대역사의 개척자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그의 동상이 한국을 구해낸 이순신의 동상 건너 쪽에 서 있는들 무엇이 이상하랴. 그의 공헌이 드높이 기념되고, 우리들도 근대한국의 시련기에 칠전팔기하며 비상하던 모습을 체감할 수 있지 않을까.

알렌 선교사는=1858년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에서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이탄 알렌의 후손으로 출생했다. 웨슬리언대 신학부마이애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5세 때인 1883년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됐다. 이듬해 9월 20일 한국땅을 처음 밟은 그는 1905년 한국을 떠날 때까지 제중원 및 세브란스 병원 설립 등 의료선교사 및 외교관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32년 고향인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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