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을 거점으로 하여 서대문, 남대문 지역으로 선교 영역을 넓힘으로 서울지역 선교 확산에 기여한 스크랜튼 가족은 1891년 3월 안식년 휴가를 얻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1892년 5월 돌아왔다.
서울에 귀환한 스크랜튼은 정동에 있던 시병원을 남대문시약소가 있는 남대문 안 상동 언덕으로 옮기기로 하였고 병원이외에 사는 집도 상동으로 옮겼다.
외국인들이 살기에 안전한 정동을 포기하면서 거주하기에 불편하고 위험한 상동으로 병원을 옮기려는 스크랜튼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민중이 있는곳으로 병원을 옮긴다는 것이 스크랜튼의 취지였으며 여기서 스크랜튼의 강한 인간애를 엿볼수가 있다.
그리하여 스크랜튼은 궁궐과 외국 공사관, 양반 저택들이 즐비하여 살기에 안전하고 편리한 ‘귀족 거주지’(royal place)를 포기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 계층이 사는 곳으로 병원과 집을 옮겼다.
이런 아들의 결단에 어머니 스크랜튼 대부인도 동참하여 이화학당은 새로 들어온 후배 선교사들에게 맡기고 아들이 새롭게 선교 사역을 시작하는 상동으로 함께 옮겨 시장바닥 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하여 상동에서는 남성보다 먼저 여성 쪽에서 교인이 나왔고 이들로 교회가 설립되었으니 상동교회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스크랜튼이 남대문 상동으로 옮긴 후 전도하여 얻은 교인들 역시 민중 계층일 것은 당연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고아 출신 전덕기(全德基)다. 스크랜튼이 전덕기를 처음 만난 것은 1888년 봄, 영아소동 때였다.
영아소동
서울 시내 기독교 복음이 확산되는 것에 불만과 위기를 느낀 수구파 보수 세력이 일으킨 사건.
당시 보수 세력은 “선교사들이 조선 아이들을 유괴하여 본국에 노예로 판다.” “선교사들이 조선 아이들을 해부하거나 삶아 먹는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선교사들을 추방하려고 하였다.
당시에 소문을 듣고 흥분한 군중들은 정동 선교부에 몰려들어 선교사 집에 돌을 던졌는데 이로인하여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와 병원이 일시적으로 폐쇄되었고 이와함께 종교 집회가 중단된 사건.
그 때 남대문에서 삼촌을 도와 숯장수를 하던 전덕기도 흥분해서 정동으로 가서 돌을 던졌는데 바로 스크랜튼의 집이었다.
그런데 돌을 맞은 스크랜튼은 집 밖으로 나와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돌을 던지는 그를 미소로 대하였다. 예상외의 반응에 놀란 것은 전덕기였다.
그 후 전덕기는 삼촌의 주선으로 스크랜튼 집에 요리사로 취직해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안에서 직접 목격한 선교사 생활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야만적이고 무례할 것으로 생각했던 선교사들의 생활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하인 신분인 자신을 가족의 일원으로 따뜻하게 대하는 선교사 가족으로부터 감명을 받았다. 선교사들의 삶에서 조선 양반들의 위선과 교만 대신 겸손과 진실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집안 어른인 스크랜튼 대부인은 자기네 가족들끼리 있을 때는 영어를 쓰다가도 전덕기만 들어오면 어린 손녀에게도 한국말을 쓰도록 지시하였다. 그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여기서 전덕기의 마음이 녹았다.
“조선에서는 신분이 다르면 대화조차 하지 않는데, 저들은 어째서 나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식구처럼 대하고 내 마음이 상할까 말 한 마디도 조심하는가?”
전덕기는 선교사들의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성경책을 빌려 읽는 중에 거기서 자신처럼 소외당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리고 스크랜튼 가족은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작은 화신들이었다.
전덕기는 개종을 결심하고 1896년 스크랜튼에게 세례를 받았다.
스크랜튼 집에 들어온 지 8년, 스크랜튼 가족이 상동으로 옮긴 지 4년만의 일이었다. 이후 전덕기 삶의 목표는 확실하게 정해졌다.
“나도 스크랜튼 목사처럼 살겠다.”
전덕기는 스크랜튼에게 ‘믿음의 큰 아들’이었다고 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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