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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선교역사

베어드의 경상도 선교

미국 북장로회 베어드(William M. Baird·배위량) 선교사는 경상도 지역의 선교에 올랐다.

베어드 선교사는 1890년에 한국으로

가서 선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조선으로의 복음 전파가 시급한 상황에서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는 베어드 선교사는 한국을 향해 긴 여정에 올랐는데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하와이와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쓰시마를 거쳐 1891년 1월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당시 한국에는 알렌 목사가 갑신정변 때 심하게 다친 민영익을 치료해준 공로로 황실 의사가 되어 있었으며 선교의 분위기도 비교적 자유로왔다.

부산 선교부를 배정받은 베어드는

2년 후에 대구를 포함한 경상도 북부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경북에서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말씀을 순수히 전할 수 있을까?”


미션을 부여받은 베어드는 물길이 아닌 땅길로 부산을 출발, 동래→범어사 계곡→ 양산→물금→밀양 유천을 거쳐 경북 청도에 1893년 4월 21일 오후에 도착했다. 난관에 부딪혔지만 되돌아갈 수 없었다. 오직 한 길, 주님을 향한 외길뿐이었다.


베어드 선교사는 청도로 들어오기 하루 전날, ‘한국의 나일’로 불리는 낙동강을 품에 안고 아름다운 영남루를 보듬은 경남 밀양 유천 강마실에 들렀다.

지금은 경부선 철로가 새 길을 따라 약간 방향을 틀었지만, 당시는 기차가 서던 구(舊) 유천역 바로 앞의 아담한 일본식 집에 짐을 풀었다. 내일이면 유학의 본향에 첫발을 내디딜 것이다.

베어드는 황해도 소래 출신 서경조와

심부름꾼 등을 이끌고 긴 발걸음을한 뒤에

경상남도의 밀양에 도착했다.

베어드 선교사가 묵었던 이 여관은 113년의 풍상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그 옛날 첫 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다.

베어드 선교사 일행을 맞았던 게 마치 어제 일인 양, 시간을 건너 뛰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하늘의 사랑이 계속될 것을 약속하는 ‘백년후애 천년지애(百年後愛 千年祉愛)’의 현장이다. 선교사 일행이 묵었던 그 여관은 신기하게도 선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밀양 옥산교회 갈보리 선교회)가 되어 있다.

마치 사도들의 발길이 닿았던 세계 각처는 로만가톨릭이든, 동방정교회든 어김없이 교회가 들어선 것처럼. 기자 일행이 찾아갔을 때는 평일 낮시간이어선지, 선교회 문이 바깥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2층에 묵었던 베어드 선교사가 걸어올라갔을 내부 계단이 어디 있음직한데, 유리문으로 들여다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100여 년 전, 당시 고단한 행장을 꾸려 청도로 떠나려는 베어드 일행에게 강마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베어드 일기에는 “책을 사겠다고 난리를 쳐서 저녁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고 적고 있다. 아마도 베이드 선교사가 판 책들은 일반 서적이 아니라 복음서 가운데 하나만 담은 ‘쪽 복음서’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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