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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와 김교신: 근대 조선에 있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 강유원 윤치호와 김교신: 근대 조선에 있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 강유원 1 이 책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 명의 조선 근대 기독교인들이 살아간 시대에서 그들이 가지게 된 사상과 벌였던 행위를 검토하고 있다. 저자가 이러한 검토를 수행하는 입각점은 “첫째, 전통적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거기에서 미래에의 비전을 어떻게 끌어냈는가, 둘째로 그리스도교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전통적 가치와 어떻게 결합했는가, 셋째로 구체적인 역사 현실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을 어디서 찾아내고 ‘신의 사랑과 정의’를 개인의 실존과 어떻게 결합하려 하였는가”이다. 일견 이러한 입각점은 구한말 기독교 수용과만 관련되어 있는듯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외래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수용자와 그 사상의 관련을 탐구할 때 .. 더보기
윤치호 장로 윤치호는 유교가 조선의 정신을 맷돌로 갈아버렸다면서 철저하게 경멸했고, 승려가 되는 이유는 딱 하나, 가난 때문이라고 믿었다. 동학 의병의 궐기에 공포를 느꼈고 경계해마지 않았다. 그의 희망은 기독교였다. 조선을 파멸로부터 구하는 길은 하루빨리 기독교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100년 사이 윤치호의 바람은 이 땅에서 충분히 성취되었다. 종교라는 이름을 들이대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속물적인 삶의 방식을 예찬하고, 힘과 금전을 숭배하며, 극우 이념을 선동하는 한국의 기독교. 이 나라는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의 어법을 빌자면, '사실상'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대통령께서 오늘날 기독교의 정직한 얼굴을 이렇게 잘 그려 주셨다. '나는 꼼수다'에서 들었던 '가카'의 육성이다. 장로가 시장이 .. 더보기
상동교회 전덕기 서울 상동교회를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만들었던 전덕기 목사. 기독교 신앙과 구국운동을 하나로 묶어 한말 민족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05년 11월 일제가 일진회를 앞세워 '보호조약' 체결 공작을 벌이자 서울시내에서 대대적인 반대 운동이 열렸다. 구국기도회와 '도끼 상소'(상소를 들어주지 않으려면 도끼로 자신의 목을 치라는 뜻), 가두시위로 이어지는 을사조약 반대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상동청년회 회장이었던 전덕기 목사였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감리교회인 서울 상동교회(1888년 설립)를 기반으로 한말(韓末)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전덕기(全德基·1875~ 1914) 목사의 기념사업이 시작됐다. 4일 서울 중구 남창동 상동교회(담임목사 서철)에서 발족한 '전덕기 목사 서거 100주년 추모사업회'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