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랜튼 모자가 한국 선교사로 나오기전 마지막 살았던 곳- 클리블랜드 클리블랜드는 스크랜튼 모자가 한국 선교사로 나오기전 마지막 살았던 곳이다. 스크랜튼이 1882년 뉴욕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어머니와 함께 클리블랜드에서 개업하고 있다가 1884년 12월 한국 개척 선교사로 임명을 받으면서 떠난 미국의 마지막 거주지이다. 지난 해 여름에는 스크랜튼의 출생지인 뉴헤이븐을 방문해서 그곳 예일대학 역사자료실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 볼수가 있다. 클리블랜드의 유적 1) 스크랜튼 모자가 클리블랜드에서 살던 집 터, 2) 스크랜튼이 개업한 병원 자리, 그리고 3) 스크랜튼 모자가 출석했던 교회 집 터와 병원 터는 모두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이들 모자가 출석했던 교회(First Methodist Church of Cleveland)도 다른 교회와 병합되어 이들이 출석했을 당시 교.. 더보기 최초의 권서 서상륜은 1882년 10월 영국성서공회에 의해 한국 교회사상 최초의 권서로 임명되어 많은 성경을 짊어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압록강 세관에서 갖고 간 성경은 모두 빼앗기고 검사관의 호의로 몸만 빠져 나와 고향 의주에 돌아온 후 전도하였다. 그러나 서상륜이 기독교를 전도한다는 사실이 관가에 알려져서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므로, 그는 삼촌이 살고 있는 황해도 장연(長淵)의 갯마을 송천(松川, 솔래 또는 소래)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 가서도 열심히 전도하여 결신자를 얻게 되었다. 서상륜에 의해 솔내에는 조그만 초가집을 예배당으로 정하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한국 개신교회의 첫 번째 교회가 되었다. 후에 솔래는 58세대 중 50세대가 예수를 믿었고 1895년 예배당까지 마련했는데 이 예배당이 장.. 더보기 포항대송교회 * 포항대송교회가 1901년 포항지역(포항시 승격 이전 영일군)에 개신교 교회역사로는 최초로 세워지다. 19세기말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동학란이 일어나고 당파싸움이 벌어지고 친일파, 친러파로 갈리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이곳 동해바다 영일만 대송면 넓은 들, 그리 크지 않는 괴동 마을에 살던 박군현氏는 일본에 가서 머무는 동안 그리스도 복음을 접하며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당으로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이 1901년 대송교회 전신인 괴동교회의 출발이었다. * 황해도에 한국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가 세워졌다면, 포항에는 동해안 지역 최초의 교회 괴동교회(현 대송교회가 있다. 두 교회는 바로 한국인이 중국과 일본에서 복음을 접하고 세운 교회라는 점, 외국인 선교사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세운 자생적인.. 더보기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