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는 개화·자강운동을 주도했던 근대적 지식인이자, 일제시기 조선 기독교의 원로였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일제 말 친일파의 '대부'이기도 했다. <윤치호 일기>는 이 같은 사상적 양면성을 지닌 윤치호의 영문일기를 한글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60여년에 걸친 그의 일기 전체를 번역한 것은 아니고 1916부터 1943년까지, 일제강점기 하의 일기만을 대상으로 했다.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서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공인으로서의 활동, 국내외 정세에 대한 견해와 전망 등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가 가진 일제의 조선 통치정책에 대한 판단,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 조선의 역사, 문화, 전통, 민족성에 대한 인식 등을 매우 진솔하게, 때로는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어 그의 일기를 통해 당시 친일 지식인의 사고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내용은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3·1운동 전후'에서는 그가 3.1운동에 반대했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한일합병 이후 "조선에 충만한 것은 천황의 은혜가 아니라 천황의 악덕이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일본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으나, 조선인들에게 독립국가를 유지해 나갈 실력이 없다고 판단, 독립운동 무용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본에 대한 비판은 만주사변을 전후로 점차 변화한다. 제2부에서는 만주사변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무장해제하고 인격수양과 민족성 개조 등을 주장한 그의 실력양성론을, 3부에서는 윤치호가 '내선일체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며 본격적으로 '친일'에 나선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4부는 일제하 조선 기독교와 윤치호의 관계에 대해, 5부는 당시 조선의 사회상과 윤치호의 일기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사상 및 행적을 엿볼 수 있는 내용 등을 담고 있어 역사적 사료로도 중요하게 읽힌다.
<윤치호 일기>에는 그의 일거수일투족과 속내는 물론 그의 시대가 상세히 담겨 있다. 따라서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김구의 <백범일지>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근대사 연구자들은 <윤치호 일기>를 '방치'해왔다. 우선 그의 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연구자가 상당히 많았다. 또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방대한 분량과 영어 독해의 부담 때문에 읽어볼 엄두를 못내는 연구자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한 개인의 일기를 사료로 볼 수 있느냐는 고정관념이나 '윤치호=친일파'라는 선입견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를 폄하하는 연구자도 제법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소 우스운 질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단재 신채호, 고당 조만식, 몽양 여운형 등의 일기가 현존한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방치' 되어왔을까? 친일파라 해서 그의 일기가 보잘 것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아니 친일파이기 때문에 그의 일기는 어느 독립운동가의 일기 못지 않은 귀중한 사료가 될 수 있다. - 김상태(편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