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는 모두 다섯 개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1898년 부지매입을 시작한 동산캠퍼스, 1954년부터 조성한 대명캠퍼스, 1978년의 성서캠퍼스와 근년에 마련한 칠곡 동영캠퍼스, 현풍캠퍼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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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1월 1일 대구에 온 안의와(Rev. Dr. James E. Adams, 1867~1929) 선교사는 그해 12월 25일에 대구에 합류한 장인차(Dr. Woodbridge O.Johnson, 1869~1951) 의료선교사와 함께 1899년 12월 24일 오늘의 계명대 의과대학 부속 동산병원의 전신인 濟衆院과 ‘미국약방’을 지금의 대구 약령시장 내 제일교회 자리에 개원했으나, 급증하는 환자와 고약한 냄새, 소음 등 어려운 입지조건을 해소하기 위해 성 밖 동산에 새 터를 마련했다.
그것이 지금의 계명대 동산 캠퍼스다. 그리고 안의와 목사의 아들인 안두화(Rev. Dr. James N. Adams. 1895~1965) 목사와 계명대 초대학장인 감부열(Rev. Dr. Archibald Cambell, 1890~1977) 박사가 1954년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계명대의 터를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대명캠퍼스이고, 1978년 계명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후 초대총장 신일희 박사가 대학의 웅대한 발전을 모색하며 비좁은 캠퍼스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제2의 창학정신으로 고심 끝에 물색한 새로운 계명의 터가 지금의 성서캠퍼스다.
이 성서캠퍼스는 부지 선정도 무척 어려웠지만 특별히 학교재산을 매각하지 않은 상태(매각할 재산도 없었지만)에서 광대한 185만㎡(55만8천 평)의 캠퍼스를 이렇게 아름답게 조성하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이 세 캠퍼스의 벽돌 한 장,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여느 곳의 예사로운 것과는 전혀 다른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건축물의 역사』는 동산캠퍼스의 의료선교박물관을 시작으로 제중관(옛 병동), 외래진료동, 교수연구관(옛 간호대학관), 동산의료원 사택, 은혜정원(선교사 묘지), 청라언덕, 경주동산병원을 지나 대명캠퍼스의 대명본관, 바우거기념도서관, 의양기념관, 동서문화관, 동산관을 훑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성서캠퍼스의 백은관, 봉경관, 동산도서관, 성서본관, 성서캠퍼스 정문 계명인 상을 거쳐 아담스채플, 행소박물관, 계명한학촌, 계명아트센터, 의과대학관, 아람관까지 이른다.
계명대 캠퍼스 가운데 동산, 대명, 성서캠퍼스는
계명대의 뿌리이다,
영남의 중심도시 대구의 근대화를
선도한 기독교 문화의 요람으로서 외국인 선교사들과 계명의
선구자들의 피와 땀이 배인 곳이며 온갖 정성과 혼이 얽혀 있는 역사적인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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