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 썸네일형 리스트형 첫 개신교 중국선교사 Robert Morrison 모리슨은 개신교 첫 중국선교사로써 1807년 9월 1일, 광동에 도착하였다. 중국선교의 문은 굳게 닫혀고, 광동(Canton)과 마카오 일부 지역만 무역 위해 외국인 거주케 했으나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요 외국인이 중국인을 접해도 안되며, 중국인 외국을 접해도 극형에 처하는 중국선교사로 중국 땅을 밟은 것이다. 런던선교회는 중국선교를 위해 당시 1786년 영국령지로 편입된 페낭(Penang, Wales 섬 지방)의 중국 이주자들에게 선교하는 것을 계획했지만 직접 중국 본토로 파송키로 결정하였다.(B.p3) 모리슨은 1782년1월 5일, 경건한 농부의가정 영국 노덤버랜드 지방 모퍼스(Morpeth)에서 팔남매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부친은 모리슨이 3세때 뉴캐스틀로 이사하여 구둣골 제조업에 종사하며.. 더보기 세계한인 선교사회와 Networking 세계 한인선교사회는 선교 현장에서 자신들을 돌아보며 이젠 “한국 선교사의 질을 높이는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자성의 바람”(신홍식p6)이 일어 나고 있음을 느끼고, “올바른 선교방향을 설정하는 책임자”란(이은무p4) 자각을 통해 선임선교사를 중심으로 “한인지도력개발회의”를 개최해 왔다. 김정웅선교사는 지도력개발회의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한국 선교사들의 수에 비해 질적인 성장의 필요성을 느끼며 선교에 관한 한 전문가들인 선임 선교사들의 지도력을 향상시켜야 될 필요성”이라 했고, “급증하는 선교사들의 수에 비례하여 많은 갈등과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선임선교사들이 함께 모여 자체 진단과 평가, 반성 등을 통해 새로운 출발과 후배 선교사들에게 지침을 주어 선교사의 문제점들을 선교.. 더보기 셍오이족 선교 1. 말레이시아 원주민 - “셍오이족” 현황 오랑 아슬리(Orang Asli)로 불리우는 말레이 본토 원주민인 “셍오이”(Sengoi)족은 파항 (Pahang)과 페락(Perak) 주에 약 6만 여명이 고산지 정글에 살고 있다. 원두막과 같은 대 나무 집에서 원시적인 생활을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는 센고이족은 “말레이인족”과 달리 이슬람교가 아닌 애니미즘(Animism) 원시신앙을 신봉하고 있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 신문도 들어오지 않으며 전기, 전화시설 등 문명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2. 셍오이족 기독교 선교와 교회현황 셍오이족 선교는 1930년부터 시작이 되어 설립되었으나 2차 대전으로 중지되었다. 그후 1960년대에 다시 재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셍오이족 교회는 말레이시아 감리교.. 더보기 4기 아프리카 기독교 4기 : 아프리카 국가들, 식민지에서 독립 시기 (2차대전 후~) 교회는 이 시기에 오순절 운동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다.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는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의 씨가 처음으로 뿌려졌다. 이제 복음의 씨앗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점점 퍼져 나가면서, 아프리카 교인들은 스스로, 자기 문화에 맞게 기독교를 적응해 나가고 있다. 특히 오순절 운동의 열정적 분위기가 자기들 문화 코드와 잘 맞는 것이다. 제4기에 이르러 그들은, 서구 선교사들이 세운 ‘제도권적 교회’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주역들은 교회 안에도 있고, 교회 바깥의 독립교회에도 있다. 그들은 제도권적 아프리카 교회의 개혁과 더불어 “아프리카 인들이 주도하는 교회 운동 African Initiated Churches (AICs)” 을.. 더보기 3기 아프리카 기독교 3기 : 제국주의적 식민 통치 시기 (19세기) 교회는 아프리카 교회 지도자 세우던 시기 19세기에 아프리카에 본격적인 서구의 선교가 시작되었지만, 그 후 두 세기 동안 아프리카 교회는 ‘인종차별주의’와 서구교회의 ‘종교식민주의’에 맞서 싸워야 했었다. 헨리 벤의 주장에 의하면, “만약 아프리카 교회가 성숙되고 스스로 뿌리내리고 자라기를 바란다면, 서구 선교사들은 처음에 불모지에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그 교회를 아프리카 지도자에게 과감하게 맡기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교회가 토착화로 스스로 자란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안 돌보아도, 성령님이 돌보시고 자라게 하시는 면도 있다. 사무엘 크로우더는Samuel Ajayi Crowther 영국교회Anglican C.. 더보기 2기 아프리카 기독교 2기: 노예 무역시대 (16~18세기) 교회는 사하라 남부의 기독교 선교 시작, 이 시기 유럽 교회들의 공헌 16~18세기에, 포르투갈이 확장하면서, 콩고 지역에 가톨릭 기독교를 전파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에, (영국과 미국의) 개신교의 부흥이 일어나면서, 아프리카에 영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기독교의 부흥은 이들 초기 선교사들의 수고의 열매와 결과들이다. 그런데 순수한 해외선교의 열정과 더불어, 아프리카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노예 인력을 탐낸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착취가 순수 선교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뼈아픈 흠이다. 그래서 순수 기독교를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토양에 심고 뿌리내리고자 했던 초기 선교사들은, 선교활동 이외에도 이런 제국주의적 착취와 침략에도.. 더보기 초기 아프리카 기독교 (1~3세기) 1~3세기에 북아프리카는 당시 기독교의 당당한 중심무대였다. 교부 오리겐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고, 교부 터툴리안과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등지) 출신이었다. 그들은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아프리카 기독교 역사의 개관 아래는 [아프리카 기독교 평전]에 나오는 미셸 시그Mich?le Sigg의 글 아프리카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과 초대교회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4부분으로 나누어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기 : 초대교회의 중심무대였던 북아프리카 1~3세기에 북아프리카는 당시 기독교의 당당한 중심무대였다. 교부 오리겐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고, 교부 터툴리안과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