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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록펠러

“당신이 세계 최고의 부자로 성공하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물었다. 그러자 존 록펠러는 대답했다. “성공하려면 귀는 열고 입은 닫아야 합니다.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행운은 진실로 원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 나는 꼭 10만 달러를 벌어 부자가 될 거야

이제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년이 농장에서 칠면조를 키우며 부자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이란 야생 칠면조 둥지에서 알을 가져다 이것을 부화시켜 키운 후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며 일찌감치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번 록펠러(1839~1937년). 열심히 일한다면 누구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는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 갔다. 어렸을 때부터 돈 버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나는 돈을 위해 일하는게 아니라, 돈이 나를 위해 일하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의 어머니는 ‘낭비의 결과는 무조건 가난’이라고 가르쳤고 그는 이런 어머니 밑에서 어려서부터 근검절약을 실천해 왔다.

 

▶ 석유왕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에 들어간 록펠러는 경리과 직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이를 통해 차곡차곡 자본을 모은 뒤 작은 곡물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경리과 직원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입과 지출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났는데 사업을 하는 록펠러에게는 일생일대 다시 없는 기회였다. 전쟁으로 물가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고 그가 싸게 구입해 창고에 쌓아 둔 곡물들은 그야말로 돈 덩어리였다. 곡물 사업으로 큰돈을 번 록펠러는 석유업에 뛰어들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나니

석유왕으로 불리면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던 록펠러는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그가 앞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어떻게 하면 잘 마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눈을 뜨자 병원복도에 쓰인 글귀가 보였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나니.” 그때 병원 한구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떻게든 병원비를 마련할 테니 입원하게 해달라는 보호자와 안 된다는 병원 측의 실랑이였다. 그 옆에서 환자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시한부 인생에서 다시 찾은 삶

“그 아이를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을 느꼈고 눈물이 흘러 앞을 똑바로 볼 수도 없었고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록펠러는 즉시 비서를 불러 그 어린아이의 입원비를 대신 지불하도록 했고 얼마 뒤 병원에 들렀을 때 회복된 어린아이의 건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 록펠러는 한 인터뷰에서 그 때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록펠러는 자선사업으로 나눔의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이후 사형선고를 받았던 암이 기적처럼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흔여덟살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 이렇게 말했다. “삶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몰랐다. 시한부 판정 후 나머지43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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