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기에는 한 때의 신비주의자나 선구 적 종교개혁가라고도 할 이단자가 나타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이러한 교회의 체질에 만 족할 수 없어 독자적인 길을 걷고,혹은 그것 을 타파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해도 좋 울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은 로마교회의 정통 신학인 사 변적 스콜라철학올 배격하고,형식적인 교회 의식에는 중점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명상 가운데서 신과의 합일을 구하고, 혹은 경건한 종교적 생활 안에서 신의 영광을 찾고 신의 사랑에 잠기려 한다.
이와 같은 신비주의의 중심지는 독일이었 다.
에크하르트〈1260경〜1327〉는 중세 최대 의 신비주의 사상가라고 일컬어지는데,그 제 자인 타울러와 조이제는 일반민중 속에서 활 동하여 커다란 감화를 주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친 것은 스트라스부르의 도미니크파 승려로, ‘신의 벗'이라고 불리는 종교서클에 속해 있던 타울러다. '단순한 신앙이야말로 지식이나 교 회에서 참되다고 하는 일반적인 행위보다 귀 하다' '한평생에 설교롤 다섯 번밖에 듣지 못 한 사람이 오히려 내가본 중에서 가장 거룩 한 사람이었다',이러한 당시의 성직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타울러의 말은 그가 얼마나 소박한 신앙을 중히 여겼는가를 잘 설명해주 고 있다. 루터에게 커다란 영향올 끼친 사람 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것도 타울러다.
루터는 1516년,《독일신학)이라는 제목의 서적을 인쇄에 붙였다. 그 책은 저자가 분명 치 않은 그 즈음의 신비주의자가 쓴 것이었지 만,그는 그 책에 다음과 같은 서문을 썼다.성서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올 제외하고 는,신 ‘ 예수,인간 및 모든 것의 성질에 대 해서 이처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을 읽어본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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