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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교회와 합병 1921년 신축한 함석지붕의 교회가 1950년 6.25사변 당시 크게 파손이 되었습니다 1953년 160평의 대지에 파손된 교회를 고치고 100평 규모의 기와지붕으로 증축합니다 종각도 규모가 쿤 것으로 세웁니다 자료출처 한국기독교회사 1923년 초가삼간을 매입 기도처로 사용합니다 일제치하에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해 이 기도처에서 새벽과 밤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한일합방후 3.1운동의 여파로 불가항력적인 기독교 말살정책에 의해 교회는 고난과 역경을 수 없이 당하면서도 종소리는 계속 울려 펴졌고 불이 꺼지지 않으면서 민족혼을 일개우는 사명을 다해왔습니다 1901년부터 1969년까지 약 70년간을 영일만(포항시가 되기 이전 ~ 포항시가 되기 까지)지역에서 사명을 감당해 왔고 그 후 괴.. 더보기
괴동교회의 변천 위치는 현재 포항제철본사와 괴동역 사이이다. 그후 함석건물 기와건물 벽돌건물 콘크리트의 뼈대로 세워진 외벽이 붉은벽돌(현 건물)등으로 변천된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박군현은 서양에서 건너온 기독교문화의 영향으로 일본이 발전했고 신청년들을 길러냈다는 사실을 개닫게 된다 복음을 받아들인 박군현은 귀국하자마자 고향마을인 영일군 대송면 괴동리에 교회를 세웁니다 당시 박문찬 안종덕 김동수 황경선 등 이웃 친지와 친구들 또 부인과 아이들까지 합하여 27명을 전도해 예배를 드리고 경북 동해안 일대에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이 표항대송교회의 전신인 괴동교회의 시작입니다 그러다가 1902년에는 교회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천주교인들이 믿지않는 자들의 비판을 받는 중에 교회까지 핍박을 받게 되어 대댜수의 교인들이 낙심하고.. 더보기
괴동교회 19세기말 이곳 동해바다 영일만 대송면 넓은들의 괴동마을에 살던 박군현씨는 일본에 가서 머무는동안 그리스도 복음을 접하였다. 이후 박군현씨는 자기집 사랑채를 예배당으로 하여 1901년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괴동교회의 출발이다. 이후 괴동교회는 대송교회로 발전하게 된다. 황해도에 한국 최초의 교회 소래교회가 세워졌다면 포항에는 동해안지역 최초의 교회 괴동교회(현 포항대송교회)가 있다 두 교회는 바로 한국인이 중국과 일본에서 복음을 접하여 세운 교회라는 점입니다 외국인선교사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세운 자생적인 교회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