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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선교사들 감리교회로 전향한 아펜셀러가 처음으로 언더우드를 만난 것은 커넷티컷에서 열린 “신학교연합회”에서 였다. 그는 이 학회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는 총명한 청년 언더우드를 잊을 길이 없었고, 그후 그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 때까지 선교의 동역자로 운명을 같이 하였다. 아펜셀러는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벽안의 땅에 와서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헌신한 위대한 선교사였다. 미국의 남장로교회가 선교사를 한국에 계속해서 파송하기로 한 것은 언더우드선교사가 네쉬빌에서 열린 신학교 협의회에서 행한 열정적인 설교와 선교보고를 들은 교단의 외국선교부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이 선교부의 실행위원회는 1891년 12월 세 명의 청년의 한국행을 승인하고, 4명의 여자도 함께 한국으로 나갈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이들은 1892년에.. 더보기
질레트 선교사 조직과 행정력에 뛰어난 질레트 선교사는 YMCA회관 건립을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 종로회관을 건축했다. 그리고 1908년 12월 3일에 개관하여 종로 YMCA시대를 열었다. 강당과 체육실 등 3층 벽돌 양옥 회관을 준공했다. 이 회관은 실내체육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주었다. 체육실의 역할에 대하여 반하트 선교사는 1919년 9월 보고에서 “추운 겨울에도 쉼 없이 운동을 했다. 몇 해 전 만해도 신사들과 그 자제들은 운동경기를 천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일변하여 모든 신사들이 운동을 즐기게 되었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YMCA의 공헌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연중 무휴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은 YMCA 밖에 없다”고 했다.(자료: YMCA 체육 운동의 발자취) 질레트 선교사는 배재학당의 기독학생회를 .. 더보기
베어드 선교사 가족 윌리엄 M 베어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대구지역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으며, 평양에서는 장로교 최초로 숭실대학을 설립한 윌리엄 M. 베어드는 1891년 2월 1일 인천에 도착하여 그해 9월부터 부산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하였다. 1895년에는 대구로 옮겨 대구제일교회와 계성학당(계명대)을 설립하고, 1896년 서울로 옮겨 경신학당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1897년 10월에는 평양에서 숭실학교를 창설하고, 교장에 취임한 후 1906년 9월 감리교와 연합하여 숭실대학으로 발전시켰다. 근로와 자조정신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 교육에 전념하였을 뿐만 아니라 네비어스 선교방법을 한국실정에 맞게 적용하여 자립, 자치, 자족에 기초한 선교 정책을 입안하였다. 숭실대학장을 사임한 후에는 교재 발간 등의 문서선교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