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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약인물

로마 교회와 제사장직

<Ⅰ>

로마 교회의 교리 체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들에게서 끊임없이 계승되어 내려왔다고 하는 소위 제사장직에 관한 교리이다. 로마 교회의 제사장들은 주로 세가지 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첫째로 저들은 중보(中保)의 일을 한다. 저들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중보자로서 서 있다. 이 주장은 대체로 인간이 어떤 특별한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억설에 의거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에게 직접 나아와 그를 신앙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저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 구원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이며 영적인 인격적 신앙 그것보다도 외부적 의식준수이다. 그리하여 저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성례 의식의 거행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들에 의하면 성례 의식들은 다만 구원의 방편일 뿐만 아니라 직접 구원의 은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통 이 예식들은 신부들에 의해서만 거행되므로 결국 사죄와 그 밖의 은총은 오직 저들의 중보를 통해서만 얻어지게 된다. 따라서 신부들을 떠나서는 구원 얻을 수가 없게 된다.

이 교리는 필연적으로 성례가 거행되는 그들의 교회밖에 있어서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처지를 취하게 한다. 그리하여 실제적으로 이 교리는 신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 취하게 한다. 이 견해가 내포하는 종교상의 근본적 결함은 그것이 죄인들로 하여금 온전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손 안에 떨어지는 것보다 한갓 무능한 인간의 손 안에 떨어지게 하는데 있다.

둘째로 신부는 희생 드리는 일을 한다.

이 일은 두말할 것 없이 참된 제사장직에 따르는 특수한 직분이니 이는 제사장은 마땅히 드릴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 신부들은 희생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미사제에 있어서 행하여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제사장격이 미사제에 필요한 요소를 채우기 위하여 주장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제사장직의 권리를 뒷받침 하기 위하여 미사제에 희생적 성격을 부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정 지을 수 없으나 적어도 이 두가지 의도가 불가분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저들은 성찬 예식이 한 의식(儀式)일 뿐 아니라 그것 자체가 희생 제물이라고 한다. 이 주장은 다른 특수한 교리들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자세한 것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려 한다.

성찬이 한 성례 의식일 분만 아니라 그것 자체가 희생 제물이라고 하는 저들의 이 주장은 첫째로 화체설(化體設)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은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참으로 현실적으로 또한 실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와같은 변화는 신부의 성별하는 권세로 말미암는다고 한다. 곧 신부에 의하여 성별된 떡은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떡 그대로이나 실질적으로는 벌써 떡이 아니며, 포도주 역시 외형적으로는 포도주 그대로이나 실상은 이미 포도주가 아니라고 한다. 곧 그것들은 실제로 못박혀 죽으신 구주의 살과 피가 된다고 한다.

성찬 자체가 희생 제물이라고 하는 이 주장이 내포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신부들에 의하여 몇번이나 반복해서 희생 제물로써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하는 가장 모독적인 사실이다. 여기에 관하여 마틴 데일 신부는 말하기를 "신부의 본질적 직무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사죄하며 성체를 봉헌하며 이것을 보관하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로마 교회의 예배의 본질이다. 떡과 포도즙이 신부로 말미암아 봉헌되면 그것은 실제로 그의 몸과 피의 제물로 화해진다. 이 헌제(獻祭)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노여움이 풀리며 사죄와 영혼의 구속이 이루어진다.

이 교리는 또한 성체숭배(聖體崇拜)라고 하는 우상 숭배를 내포하고 있다. 신부는 제단에서 예배 드릴 때에 마땅히 무릎을 꿇고 떡과 포도즙에 경배 드리며, 마치 그리스도에게 하듯 그것들에게 기도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회중은 하나님께만 합당한 경배로서 그것들을 숭배하지 않으면 안된다(트렌트공의회 제13회기, 제5장).

이제 셋째로 신부는 대언의 직무를 행사하는데 이는 주로 고해성사(告解聖事)로 말미암아 행하여진다.

신부는 사람의 죄를 사유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대언의 권세는 땅 위의 산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연옥에 있는 것으로 주장되어 있는 죽은 자의 영혼들에게 까지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상에 말한 것이 로마 교회의 성직에 대한 견해이다. 신부는 한 대언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 있다. 그는 땅 위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인간의 대언자로서 하나님과 의논하며 죄인들을 사죄하거나 정죄함에 합당한 조건을 정하며 죄인들을 사유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린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죄를 보류하기도 하고 이를 사하기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Ⅱ>

위에 말한 로마 교회의 주장들은 성경에 의하여 증명되지 못한다. 신약 성경의 그 어디에도 교직자에 대하여 "히에류스"(Hiereus)라는 말 곧 제사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복음의 사역자들에게 제사장 직무를 돌려서 말한 데는 신약 중에 한 곳도 없다.

영감된 이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상고하여 보면 보통 인간으로서 제사장 직권을 행사한 예를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도들 중에 어느 누가 중보자로 자처하였는가? 그들 중에

"너희는 구원받기 위하여 내게로 오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들이 희생 제사를 드린 적이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조금이라도 암시한 일이 있는가?

성경 어느 곳에서 사죄의 권세를 인간이 주장한 것을 발견 할 수 있는가?

더욱이 로마 교회의 전 교리 체계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교훈에 배치될 뿐 아니라 복음의 특징에도 반대된다.

복음의 근본적 특징은 그 단순성과 영적인 것에 있다. 그것은 인간을 외적(外的)이며 감각적인 기반에서 자유하게 하며 의식은 그 중요성에 있어서 제 2차적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은 어디서나 하나님께 자유로이 나아갈 특권을 누리며, 하나님의 구원을 확보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뿐임을 선언한다. 그것은 때와 곳의 상관이 없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직접적 교제를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우리 주님은 가장 뜻 깊은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Ⅲ>

홀로 한 분이신 참 제사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단지 이것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직무는 한갓 모형(模型)이었고 그 모든 상세한 설명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豫表)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무수한 헌제는 예배하는 자들에게 오실 구속주(救贖主)를 지표(指標)할 때에만 그 목적을 참으로 달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오시면 그들의 사역은 성취되며 따라서 그들은 존재를 그치게 된다. 그리스도는 제사장의 직무를 완성하신다. 그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직무에 부르심을 받았고 이를 감당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무한한 위엄과 완전한 성결을 지니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사 인간을 체휼해 주시는 인자(人子)되신 그에게 우리는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다.

그는 실로 죄인 괴수까지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이시오 또한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유일의 길이시다. 누구든지 그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그는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참된 희생을 드리셨다. 그의 죽으심은 제사장으로서의 행위이었다. 그는 스스로 제사장과, 또한 희생제물과, 제단(祭壇)이 되셔서 영원한 영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하나님께 흠없이 바쳤다.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은 갈보리 제단에서 고뇌(苦惱)와 수욕을 끝까지 견디사 자신을 하나님께 향내나는 제물로 온전히 바쳤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참된 구속을 가져왔다. 이 구속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거니와, 십자가의 오묘한 도리(道理)는 확실히 인간의 모든 해석 보다 훨씬 깊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성격에 있어서 대리적이요 그 목적에 있어서 구속적(救贖的)이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는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를 멸하시고 불법을 없이 하사 영원한 의를 가져왔다. 이 속죄의 성업은 충분하고도 자유로운 죄의 용서를 위한 의(義)의 기초를 이루셨다. 그의 구속은 완성되었고 그것은 영원한 효력을 나타낸다. 따라서 그것은 반복될 필요가 없다. 이 진정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는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다(히10:14).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위한 참된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으로서 대언(代言)의 역사를 하신다. 이 대언의 직무는 제사장의 영원한 직분이다. 비록 그의 속죄의 성업이 완성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대언의 사역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그는 자기의 피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 이 피는 힘있게 말하여 우리를 위하여 도고(禱告)한다.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은 모든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이름들을 그 가슴에 달고 있으며 그를 좇는 무리들에 관한 일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영원히 살아계셔서 대언하심으로써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신다"(히7:25).

로마교 교리 체계 가운데 가장 큰 죄악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해 모욕을 가한데 있다. 로마 교회의 신부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를 빼앗는다. 그들의 주장이 용납되는 한 독일(獨一)하신 구속주의 직분의 영광이 가리워지나니 이는 그것이 제사장직의 최종성(最終性)과 유효성(有效性)을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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