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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유왕 록펠러

Rockefeller is the founder of Rockefeller foundation that exists today. He is renowned as king of oil and considered as top three rich in US history with Carnegy and Gould. In the center of industrialization during 1878 he accounted for 95% of total oil that was being produced in the US. It was all time best monopoly in almost whole human history.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기업을 그 당시에 설립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독점 금지법이 록펠러를 상대로 겨냥 해 만든 법일 정도로 그의 부는 가히 엄청났습니다. 1911년 결국 독점금지법에 의하여 33개 회사로 분할 되었는데 현존하는 7대 석유기업 중 5곳이 록펠러에서 분리되어 나온 기업일 만큼 아직도 그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하지만 록펠러는 경쟁을 피하기 위해 냉철하게 모든 기업을 인수 합병하고 돈만 되면 뭐든지하는 악덕 재벌기업의 대표주자였습니다.

스탠더드오일

불과 58세에 은퇴 후 그는 부의 축적을 멈추고 사회 환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거금을 기부하고 서도 더러운 돈이라며 받지 않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게이츠 목사의 등장으로 이미지 메이킹에 들어갑니다. 자선단체를 설립하고, 의학 연구소 설립, 유명한 시카고 대학을 포함한 수많은 대학을 짓고, 교회를 설립하며 서서히 인식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는 그 당시 평균 수명인 60세를 뛰어 넘어 98세까지 장수하며 동시대 사람들이 차차 세상을 떠나면서 존경받는 인물로 탈바꿈하기 시작합니다.

At the age of 58 he retired from the industry and stopped accumulating wealth jumping into charity buisiness. Rockefeller at first donated large amount of money but was rejected because of the dirty money image he had. Then sudden advent of Minister Gates changed his life forever by starting whole new image making. Rockefeller and Gates founded charity, medical research center, established university including famous chicago university, church and so on. Average life span back then was only around 60s but he lived until 98. As time passes the generation who discriminated him all passed away and Rockefeller was re illuminated as admired person to younger generation.

미국의 호황이 끝난 후 대공황때 그의 자산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록펠러는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12000만 달러의 록펠러 타워 건축 사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또한 록펠러재단은 뉴욕시가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뉴욕의 수도관을 자비로 묻어주고 뉴욕시민들에게 평생 수도요금을 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혜택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혜택은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경제공황 당시 부자에 대한 적대감이 다시 커졌지만 록펠러에 대한 국민 반응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After the boom of US economy there came the great depression and Rockefeller's asset fall to the ground. But still he decided to build a Rockefeller Tower that costs 120 millions dollars to promote and make jobs for people. When Newyork was struggling from depression Rockefeller paid water fee by his own money and this previledge is still on going. Antipathy toward the riches were tremendous but due to Rockefellers altruistic act the people's cognition was improved.

 

그는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살았지만 향년 98세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예술을 무시하고 정치를 혐오하였으나 록펠러 자손들은 록펠러 재단을 통해 100년 이상 경영, 자선, 정치,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21세기에 이른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문의 총재산은 5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미국의 자본과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큰 손, 월가의 로스차일드와 함께 세계증시를 쥐락펴락하는 유대인으로 손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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